수도쿠(数独, Sudoku)는 일본어 「数字は独身に限る」(すうじはどくしんにかぎる), 즉 “숫자는 독신(혼자)만 허용된다”는 문장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 표현은 퍼즐의 규칙인 “한 칸에 오직 하나의 숫자만 들어간다”는 개념을 담고 있으며, 이를 줄여 ‘数独(すうどく, Sudoku)’라는 간단한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일본에서는 '수도쿠'라는 말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퍼즐에 들어가는 ‘숫자’를 영어로 번역한 ‘넘버(number)’라는 단어를 일본식 발음으로 바꾼 '남바(ナンバー)' 또는 '남바스(ナンバース)'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으로 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닭도리탕’이라는 말이 일본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퍼지며, ‘닭볶음탕’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일본어 투를 제거하겠다는 의지의 일환이었죠. 비록 모든 국민이 참여한 독립운동은 아니었지만, 작은 언어 습관 하나로 자부심을 느끼고자 했던 시대적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외국어, 특히 영어에 대해 훨씬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문화를 오히려 빠르게 수용했고, 영어 단어를 일본식으로 변형해 적극적으로 일상 언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넘버’가 ‘남바’, ‘아이스크림’이 ‘아이스’, ‘버스’가 ‘바스’로 바뀌는 식이죠.
실제로 일본에서는 김치(kimchi)를 ‘기무치(キムチ)’라 부르고, 삼겹살도 ‘삼무겹살(サムギョプサル)’, 갈비는 ‘가르비(カルビ)’로 표현하며, 별다른 저항감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문화나 언어에 대한 개방성과 실용성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수도쿠’라는 일본어식 명칭을 널리 사용하고 있음에도, 정작 일본 사람들은 이 퍼즐을 ‘수도쿠’보다는 ‘남바스 퍼즐’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이는 언어와 문화의 확산이 본래의 명칭이나 방식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예로, 이세돌 9단과 대국을 벌였던 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도 흥미로운 언어적 상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알파고’라는 이름은 ‘알파(Alpha)’ + ‘고(Go)’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고(Go)’는 바둑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고(Go)’는 사실 일본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일본에서는 바둑을 ‘이고(囲碁, igo)’라고 부르며, 줄여서 ‘고(碁, Go)’라고도 합니다. 오늘날 영어권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는 바둑을 일본어식인 ‘Go’로 부르며 인식하고 있는 것이죠.
즉, 일본어 표현이 글로벌 표준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는 셈입니다. 평소 일본어를 꺼리는 사람들도 ‘알파고’라는 단어가 일본어에서 유래한 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