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영어 4 - 가. 멀리 돌아서 다시 온 영어 공부

by 지천명영어 posted May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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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의 영어학습 여행

 

 

1. 멀리 돌아서 다시 온 영어 공부 

 

 

2 동안 받아놓은 영어 교재와 카세트 테이프는 이사 갈 때마다 나의 의지박약을 비웃는 표상이었다.

 

 

2. 본격적인 영어공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기록해서 책상에 붙여놓은 것은 단지 쇼맨십만은 아니다. 자신에 대한 독려이다.

 


 

. 멀리 돌아서 다시 영어 공부

 

내가 영어를 시작하게 된 건 나이 50 되어서이다.

 

물론 영어공부를 본적적으로 시작한 건 이때지만, 사실 영어에 대한 열망은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있었다.

 

대학교 2학년 , 아는 친구가 영어회화 학원을 등록했는데 등록비가 50만원이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사립 대학 1학기 등록금이 50만원이 안되었기에 50만원은 상당히 돈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3개월 동안 학원에서 숙식하면서 매일 영어로만 이야기 하는 특수학원이고, 3개월 과정을 마치면 어느 정도 영어회화를 대부분 있기 때문에 일생으로 보면 50만원은 투자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때, 나도 만약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는 했으나, 감히 50만원을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에 포기할 밖에 없었다.

 

다른 친구는 카투사를 지원해서 갔다 왔다. 당시 카투사는 순전히 지원한 인원 중에 성적순으로 뽑았기에 영어 실력이 좋은 친구들은 모두 카투사를 지원하는 형편이었다. 나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군대 생각이 없어서 지원을 안 했으나, 한편으로 영어실력에 확신이 없기도 했다. 어쨌든 그 당시에는 카투사를 다녀온 친구들은 모두 영어를 하는 걸로 생각되어 많이 부러워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카투사를 제대 했다고 하더라도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지 몰라도 영어를 모두 잘한다고 오해했던 것 같다. 3년이 안된 동안 미군과 생활하면서 개인 노력을 친구는 영어 대화를 잘할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영어 대화를 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외에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 미국에 건너간 친구는 한명도 없었다. 당시 유학을 간다는 개인 비용으로는 상상하기 너무 어려운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당시 비디오 플레이어가 신혼 혼수품의 기본으로 만큼 가정에 보급되었고, 동네마다 비디오 대여점이 있어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영어 공부를 있는 여건은 마련되고 있었다. 미국 영화를 보면 영어듣기 실력을 늘린다는 핑계를 있었다.

 

영어 회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영어듣기를 먼저 하면 좋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었다. 나는 이때 외화를 보면서 영어 듣기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티브이 한글자막을 나오는 부분을 종이로 가려서 공부하기도 하는 했으나, 내용을 모르는 상태로는 영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금방 그만두고 말았다.

 

취업시즌이 되어도 당시는 대기업에서 영어 성적을 토익이나 토플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자체 필기 시험이 대부분이었기에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방식으로 시험을 보면 되어 취업에는 영어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직장을 들어가고 나니 상황이 많이 바뀌게 된다.

 

갑자기 많은 대기업에서 토익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일부 회사에서는 진급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토익 성적을 요구했으며, 종합상사의 경우에는 회사 게시판에 개인별 토익 성적을 붙여 놓고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은행에 취업을 했기 때문에, 내가 다니던 은행은 신설 은행으로 해외지사가 처음에는 아애 없기 때문에, 영어가 필요한 일은 당분간 없었다.

 

물론 은행을 다니면서, 세계화, 글로벌 영향으로 은행에도 영어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몇 가지 변화는 있었으나, 국내 영업을 위주로 하는 다수의 은행원들에게는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이때 나의 영어학습 여행은 미로 속이다.

 

한번은 여의도 LG트윈타워빌딩에 근무할 , 내가 외환계 담당 책임자로 있을 때다. 이때 대기업은 벌써 글로벌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심심치 않게 외국인들을 LG트윈타워 빌딩에서 있게 되었다.

 

나와 같이 일하는 외환계 젊은 직원이 4명 있었는데, 이들은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나서 집에 가기 전에 저녁식사 겸 간단한 소주회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같이 술을 먹는데, 자기들끼리는 영어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들었지만 1명이 영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어서 술김에 자기네끼리는 영어로 대화하곤 한다는 것이다.

 

말을 듣고 머리에 생각은 책임자로서 직원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낌과 동시에 한편으로 만약에 나에게 영어로 대화하자고 했을 때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엘지 트윈타워 빌딩 지하 매장에서 판매하는 영어 공부용 교재 2년치를 거금을 들여서 계약했다. 매달 교재와 녹음테이프를 보내주고 사은품으로 카세트 플레이어를 주는 조건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2 동안 받아놓은 영어 교재와 카세트 테이프는 이사 갈 때마다 나의 의지박약을 비웃는 표상이었다.

 

년뒤 은행 본점에서 근무할 때이다. 나도 은행은 다니는 동안에 너무 안일하게 사는 같기도 하고, 나이를 먹어서도 영어회화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감정에 이끌려 을지로 입구에 있는 코리아헤럴드 학원에서 1개월짜리 AFKN 듣기 독해를 신청하기도 했으나, 수업에는 5번도 못 다녔다.

 

뒤에도 은행에서 복지차원에서 영어학원 학습 보조비를 주는 제도가 있었으나, 보조비를 받기 위해서는 토익 시험을 보는 조건이었다. 물론 영어학원을 신청해서 다니지도 않았으며, 보조비를 받지도 않았고, 토익시험을 본적도 없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은행에서도 해외지점을 점차 늘리고 있고 은행 연계 해외 비즈니스가 많아짐에 따라, 파격적인 영어독려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근무성적이 우수하면서 영어성적 우수자자는 해외 연수 1년짜리, 2년짜리를 전액 은행비용 지불하면서 지원해주는 파격적으로 추진하였다. 하지만, 나는 은행에서 요구하는 영어성적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해외 연수를 다녀온 동료, 후배들을 보면서 부러워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은행에서 25년을 다니다 퇴직했다.

 

퇴직하기 2년 전, 나는 심장수술을 4 받고 몸이 많이 쇠약해져서, 은행에서는 배려차원에서 지점이 아닌 후선 업무를 있는 곳으로 배치를 해주었다.

 

이곳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소재한 부서로 직원은 200명이 넘는 아주 부서였으나,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곳이라 업무시간 중에는 별다른 이슈가 없었다. 나의 주요 임무가 직원들이 편하게 일할 있도록 하는 것이라, 아무래도 간섭을 수록 직원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수술 후유증인 상태로 업무에 무리를 수도 없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갖는 시간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은행업무가 4 끝나기 때문에 편안한 직장이라는 선입감도 일부 있으나, 내가 다니던 곳에서 한참 일할 나이 40 전후에는 10년 동안 휴가를 거의 못 갈 정도로 과중했다. 야근은 물론이고 토요일. 일요일 하루는 거의 출근해서 일해야 하는 개인 시간이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하라는 배려에서 배치된 곳에서 느끼는 이완감, 여유는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이상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는 건강에 치명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은행일은 당분간 멀리하고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일찍 퇴근하고 남는 시간에 나를 위한 무언가를 찾아보는 도중에, '영어회화'공부를 머리에 떠올랐다. 그래서 여유 있는 시간에 젊었을 때 보고 싶었던 영어회화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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